손주는 참 예쁩니다.
그런데… 참 어렵기도 합니다.
어릴 땐 품에 안기기만 해도 좋았는데,
조금 자라더니
눈도 잘 안 마주치고,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핸드폰만 봅니다.
처음엔 그게 섭섭했습니다.
“할아버지랑 얘기 좀 하자.”
“그런 건 그만 보고.”
말은 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큰둥했죠.
그때부터 생각했습니다.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말을 바꾸니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가르치듯 말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그건 틀렸어.”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런 방식에 마음을 닫더군요.
그래서 말투를 바꿨습니다.
“그건 왜 그렇게 하는 거니?”
“이건 할아버지 때랑 어떻게 다르니?”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니
손주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설명해주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진짜 소통이 시작되더군요.
모르는 걸 인정하니 가까워졌다
SNS, 게임, 유튜브…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하지만 ‘내가 몰라서 못 따라가는구나’라고 인정하고
오히려 “이거는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니
손주가 직접 알려주더군요.
“할아버지, 그건 이렇게 해야 돼요.”
자신감 있게 설명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어요.
세대 차이를 좁히는 건
‘내가 맞다’는 고집보다
‘네가 아는 걸 나도 알고 싶다’는 자세였어요.
함께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기다린다고 시간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손주가 좋아하는 활동을 함께 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주말엔 같이 동네 산책,
집에서는 퍼즐 맞추기나 보드게임.
가끔은 손주가 보는 애니메이션을 같이 봤습니다.
어색했지만, 같이 웃고 같이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조용히 우리 사이를 이어주는 줄이 되었습니다.
관계는 자연스럽게 자라는 게 아니라
시간을 투자해야 자라난다는 걸 배웠습니다.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배울 수 있는 존재
손주는 제가 모르는 세상을 삽니다.
저는 손주가 아직 모르는 세상을 살아왔죠.
그걸 인정하니
서로 배울 게 많은 사이가 됩니다.
요즘은 손주가 먼저 와서
“할아버지, 이거 들어봤어요?” 하고 말 붙입니다.
그 순간, 마음속이 꽉 차오릅니다.
세대 간 소통은 기술이라기보다
관심과 기다림, 그리고 존중의 태도라는 걸
이제는 정말 알게 됐습니다.